𝑷𝒍𝒂𝒚𝒍𝒊𝒔𝒕🎙️ #6월항쟁 #민중가요모음 #오노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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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هزار بار بازدید - 7 ماه پیش - 🎙️ #6·10민주항쟁 그리고
🎙️ #6·10민주항쟁 그리고 #민중가요

𝒕𝒓𝒂𝒄𝒌1. 00:00 #양희은 #늙은_군인의_노래
포크 싱어송라이터 김민기가 군복무 하던 1976년, 정년퇴임하는 선임하사의 술자리 푸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작곡해 선물했다고 한다. 1979년 양희은의 정규 음반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에 수록해 발표했으나, 김민기의 이름으로는 발표하지 못해 양희은 작사, 김아영 작곡으로 음반에 실어야 했다. 그런데 국방부에서 이 노래에 대한 금지령을 내리면서 음반사에서 처음에는 실었던 곡을 빼고 다시 음반을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노래마저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대의 풍경이다. 1987년 6·10민주항쟁 당시 이 노래는 [늙은 투사의 노래] 등으로 가사를 바꿔서 부르곤 했다. 집회에 따라서는 [늙은 노동자의 노래]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당시 집회에서는 친숙한 노래의 가사를 바꿔서 부르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𝒕𝒓𝒂𝒄𝒌2. 03:55 #안치환 #흔들리지_않게
1970년대 후반 기독교 사회운동 쪽에서 부르면서 알려진 복음성가 계열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1987년 6·10민주항쟁 당시에는 노래모임 새벽과 대학 노래패, 종교계 노래패 뿐만 아니라 몇몇 민중가요 싱어송라이터가 활동하고 있었으며, 이들이 내놓은 불법 카세트테이프가 대학가 등에서 상당한 판매량을 올렸다. 하지만 민중가요는 방송 금지된 상황이라 대중들에게 알려진 민중가요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리고 다양한 세대, 계급, 계층이 모인 범국민항쟁에서는 금세 따라 부를 수 있는 쉽고 짧은 노래가 더 효과적이었다. [흔들리지 않게]는 1970년대부터 불려 어느 정도 친숙했을 뿐 아니라, 금세 따라 부를 수 있어 당시 시위에서 부르곤 했다. 안치환은 이 노래를 1997년에 발표한 민중가요 리메이크 음반 [Nostalgia]에 이어 2006년에 발표한 [Beyond Nostalgia] 음반에 담았다. 창작자는 밝혀지지 않았다.

𝒕𝒓𝒂𝒄𝒌3. 06:12 #들국화 #우리의소원
 1987년 6·10민주항쟁 즈음 시위대와 운동권에서는 널리 알려진 노래의 가사를 바꿔 부르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어린이 노래로 친숙한 [우리의 소원]이다. 시위대는 이 노래의 ‘통일’ 부분을 ‘민주’나 ‘자주’ 등으로 바꿔 부르는 방식으로 합창했다. 이 곡은 1947년 안석주가 작사하고, 안석주의 아들인 작곡가 안병원이 곡을 붙였다. 밴드 들국화는 모든 음반에 반드시 건전가요를 넣어야 하는 규정이 있는 5공화국 상황에서 다른 뮤지션들처럼 기존에 녹음한 건전가요 중 하나를 넣는 대신, 자신들이 부르고 연주한 [우리의 소원]을 삽입함으로써 자신들의 음반 분위기를 지키는 자존심을 보여주었다.

𝒕𝒓𝒂𝒄𝒌4. 08:41 #양희은 #상록수
싱어송라이터 김민기가 1977년에 만든 곡이다. 그가 공장에 다니던 시절 동료들의 합동 결혼식에서 조학(朝學) 학생들과 함께 축가로 불러주었다고 한다. 이 노래는 1979년 양희은의 정규 음반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에 수록해 발표했는데, 발표 당시에는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이라는 긴 제목이었다. 이 노래 역시 김민기의 작품임을 밝히지 못해 김아영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4절까지 이어지는 긴 가사와 드라마틱한 흐름, 낙관적인 결말이 돋보이는 명곡이다. 이후 공익광고와 대통령 선거 광고 등에서 활용했으며, 알리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𝒕𝒓𝒂𝒄𝒌5. 13:57 #안치환 #농민가
대표적인 민중가요 가운데 하나로 1980년대부터 농민 집회 현장과 대학 농활 등에서 오랫동안 불러온 노래이다. 한동안 창작자가 밝혀지지 않았다가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농림부 장관을 맡았던 김성훈 교수가 가사를 썼고, 후배 이용화가 곡을 붙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노래는 1961년 서울대학교 농대 동아리 ‘농사단’의 단가였다고 한다. 안치환은 이 노래를 1997년에 발표한 민중가요 리메이크 음반 [Nostalgia]에 이어 2006년에 발표한 [Beyond Nostalgia] 음반에 담았다. 투박한 정서가 농민가라는 제목과 잘 어울린다. 1980년대 운동권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해방춤을 추는 놀이문화가 있었다.

𝒕𝒓𝒂𝒄𝒌6. 15:26 #안치환 #이_세상_사는_동안
창작자가 밝혀지지 않은 곡이다. 1984년 민중가요 창작자 이성지가 활동한 감리교청년회 문화선교위원회 산하에서 만든 카세트 테이프에 실렸고, 이후 안치환이 1997년에 발표한 민중가요 리메이크 음반 [Nostalgia]에 이어 2006년에 만든 [Beyond Nostalgia] 음반에 담았다. 원곡에서는 교회 노래의 분위기가 강하게 풍긴다. 1980년대 운동권에서는 이처럼 교회 쪽에서 부르던 노래들을 민중가요처럼 부르기도 했는데, 암울한 시대의 고단하고 간절한 마음을 잘 담아낸 노래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대중음악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질감이 배어난다.

𝒕𝒓𝒂𝒄𝒌7. 18:50 #윤미진 #햇살(민주)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시인 신경림의 시에 여성 싱어송라이터 안혜경이 곡을 붙였다. 안혜경은 이 노래 외에도 [까치길], [일이 필요해]를 비롯한 다수의 민중가요를 만들었고, 1990년대에는 여성문화예술운동에 앞장섰다. 이 노래는 서울대학교 노래패 메아리의 카세트 테이프, 안치환의 1997년 민중가요 리메이크 음반 [Nostalgia], 민중가요 리메이크 음반 [아가미]에도 실렸다. [아가미] 음반에서는 밴드 못(Mot)이 불렀다. 윤미진은 서총련 노래단 조국과 청춘과 민중가요 노래패 꽃다지를 거쳐 솔로로 활동 중인 여성 민중가요 싱어송라이터이다. 베이스 기타와 클래식 기타의 앙상블에서 2000년대 민중가요 음악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𝒕𝒓𝒂𝒄𝒌8. 22:56 #안치환 #타는목마름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기부터 널리 알려진 김지하의 시에 1980년대 초중반 연세대학교 학생 이성연이 곡을 붙였다. 당시 민중가요 문화가 전문 창작자에게만 기대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창작물이다. 원래는 2절 마지막 부분의 ‘만세 만세 민주주의여 만세’라는 노랫말이 없었는데 구전되는 과정에서 더해졌다고 한다. 민중가요 문화가 어떻게 이어져왔는지 알 수 있다. 노래모임 새벽이 1985년에 발표한 카세트테이프 음반 [민주주의여 만세]를 비롯해 여러 민중가요 테이프에 실릴 만큼 널리 사랑받았다.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과 함께 1980년대 민중가요 가운데 느리고 비장한 단조의 노래를 대표하는 곡이다.

𝒕𝒓𝒂𝒄𝒌9. 26:31 #노래를찾는사람들 #청산이소리쳐부르거든
시인 양성우의 시에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80학번 박해경이 곡을 붙였다. 박해경이 곡을 썼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려졌는데, 이 노래는 박해경만의 작품이 아니다. 연세대학교 정외과 80학번 성종규는 박해경과 같은 라틴문제연구회에서 활동했는데, 박해경이 앞부분만 쓴 곡에 “저 깊은 곳에 영혼의 외침 / 저 험한 곳에 민중의 뼈아픈 고통 / 내 작은 이 한 몸 역사에 바쳐 싸우리라 사랑하리”라는 가사와 곡을 덧붙여 노래를 지금처럼 완성했다. 결의와 비장미 넘치는 노래답게 학교를 떠나 노동현장으로 투신하는 친구들을 전송하는 자리에서 많이 불렀다고 한다. 노래모임 새벽의 공연을 실황 녹음한 노래 테이프 [또 다시 들을 빼앗겨]에 처음 수록했으며, 안치환의 1997년 민중가요 리메이크 음반 [Nostalgia]에도 담겨있다. 널리 사랑받은 1980년대 민중가요 가운데 하나다.

𝒕𝒓𝒂𝒄𝒌10. 30:54 #꽃다지 #불나비
지금까지 노동자 집회 등에서 곧잘 부르는 곡이다. 아직도 창작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는데, 1970년대 후반 노동조합에서도 불렀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로 40년 이상 꾸준히 사랑받는 구전 민중가요다. 여느 민중가요와 달리 밝고 신나는 느낌이 도드라지고, 민중가요 특유의 관념적인 노랫말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에게 사랑받는다는 사실은 대중이 어떤 정서와 어법을 더 좋아하는지 알려준다. 여성 민중가수 류금신, 최도은 등도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집회에서 자주 불렀다. 집회의 분위기를 끌어올릴 때 안성맞춤인 곡.

𝒕𝒓𝒂𝒄𝒌11. 34:42 #노래를찾는사람들 #그날이오면
1985년 노래모임 새벽에서 전태일 열사의 일대기를 소재로 만든 노래공연 「불꽃」의 마지막 곡으로, 노래모임 새벽을 이끈 문승현의 대표곡이다. 숭고한 열망을 표현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차분하고 극적인 흐름이 잘 어우러져 한국 민중가요의 최고봉이라도 해도 부족함이 없다. 민중가요가 노래의 메시지와 수용층의 힘만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독자적인 미학을 형성했음을 증거하는 곡이다. 당시 민중가요 창작자들의 역량은 기성 음악계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 노래는 노래모임 새벽이 1986년에 만든 카세트테이프 음반 [그날이 오면]에 실린 후, 1989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공식 2집에 실려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날은 언제 올까. 어떻게 해야 그날이 찾아올까.

𝒕𝒓𝒂𝒄𝒌12. 38:51 #노래를찾는사람들 #유월의노래
김정환 시인의 시에 노래모임 새벽에서 활동한 이현관이 곡을 붙였다. 1987년 6월항쟁은 직선제 개헌이라는 성과와 대선 패배라는 아픔을 남기며 마무리되었는데, 6·10민주항쟁을 기억하거나 계승하는 노래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6·10민주항쟁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이 노동, 통일, 과거사 진상규명 등의 운동을 전투적으로 펼치느라 매우 분주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노래는 6·10민주항쟁 이후 6·10민주항쟁을 이어나가겠다는 다짐을 담은 노래이자,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비정규음반인 [모음하나](1997년)를 통해 공식 발표한 노래라는 점에 남다른 차이가 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콘서트에서 윤선애가 부르기도 했다.

/ 글: 서정민갑(대중음악 의견가)
7 ماه پیش در تاریخ 1402/10/13 منتشر شده اس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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