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소환' 우병우, 누구길래? / YTN (Yes! Top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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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 هزار بار بازدید - 8 سال پیش -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우병우 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우병우 전 수석은 영주에서 교사로 재직한 아버지를 따라 줄곧 영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릴 때부터 '천재'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서울대 법대 4학년이던 20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소년 등과'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는데요. 당시 장래희망을 '검사'라고 했던 우 전 수석에 대해 고3 담임이었던 한병태 전 영주고 교장은 이렇게 기억하기도 했습니다. [한병태 / 前 영주고 교장 (우병우 前 수석 고3 담임) : 우 수석에게 왜 검사를 하려고 하느냐 물었다. 그는 '정의로운 사회와 부정과 부패가 없는 국가를 만들겠다' 당돌하리만큼 또박또박 말했다. 참 독특한 학생으로 기억한다.] 이후 우 전 수석은 검찰에서 출세 가도를 달렸습니다. 1990년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그가 검사로 임관할 때 성적은 2등이었습니다. 그는 초임을 서울중앙지검에서 보냈습니다. 법조 관계자는 "우 수석은 어릴 적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만큼 어떤 자리에서도 자신감 있던 모습을 보였다. 이게 주변을 불편하게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그래서 젊은 시절 우 수석에게 '깁스'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검 중수부 1과장이던 지난 2009년엔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습니다. 당시 그는 미리 준비한 200여 개의 질문을 들고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심문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수사를 받은 지 20여 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당시 그는 노 전 대통령과 가족들에 대한 피의사실을 언론에 실시간 중계하듯 알려 과잉공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뒤 우 수석은 자리를 옮겨 대검 범죄정보기획관과 수사기획관을 지내면서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 수사를 지휘했습니다. 이후 인천지검 부천지청장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거친 뒤 지난 2013년 5월 스스로 검찰을 떠났습니다. 늘 엘리트였지만 2012년과 2013년 두 번이나 검사장 승진에 실패한 뒤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쿨'하게 사직서를 던졌지만 그가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린 짧은 글을 보면 검사장에 오르지 못한 상실감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검사장 탈락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검사'였다는 일각의 견해와 '너무 많은 재산'이 더 큰 악재로 작용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재력가 사위'로 불렸던 우 전 수석은 고 이상달 ... (중략) ▶ 기사 원문 : www.ytn.co.kr/_ln/0103_201611071500108299 ▶ 제보 안내 : goo.gl/gEvsAL, 모바일앱, [email protected], #2424 ▣ YTN 유튜브 채널 구독 : goo.gl/Ytb5SZ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
8 سال پیش در تاریخ 1395/08/16 منتشر شده اس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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