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의 여성들] 삼양식품 김정수 편/라면업계의 여걸 삼양식품 김정수 부회장의 라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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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라면 #김정수 #전인장
삼양식품 김정수 편 - 라면업계의 여걸 삼양식품 김정수 부회장의 라면 인생
제목 1,재벌가 안방마님에서 경영인으로 변신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김정수는 누구?  2,불닭볶음면 런칭해 삼양식품을 구해낸 김 부회장의 경영비법    3,재벌가 안방마님의 로망이 된 김정수 부회장의 또 다른 꿈은?

안녕하세요 홍성추입니다.
오늘은 그야말로 재벌가의 여걸로 통하는 삼양식품 김정수 부회장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라면의 원조로 통하는 삼양라면을 만드는 회사인 삼양식품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이가 바로 김정수 부회장입니다. 김 부회장은 삼양식품 맏며느리로 들어가 안방마님에서 기업 총수로 맹활약하고 있는 여걸 중의 여걸입니다. 불닭볶음면을 런칭해 라면업계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그의 기업관과 성공스토리는 재벌가 여인들에게는 하나의 로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시 동행해 눈길을 끈 여성 경제인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바로 삼양식품 김정수 부회장입니다. 윤 대통령은 삼양식품 홍보관을 찾아 김정수 부회장으로부터 베트남 진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직접 격려를 한 것입니다. 삼양식품으로서는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고  김 부회장 역시 벅차오르는 감격을 가눌 수 없었다는 후문입니다. 김 부회장이 이러한 영광을 차지하기까지 엄청난 시련과 고초가 있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라면의 대명사로 불리는 삼양식품은 1961년 창업주 전중윤 회장이 남대문 시장에서 꿀꿀이 죽을 얻어먹기 위해 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고 헐벗고 굶주린 국민들에게 뭔가 영양식을 보급해야 겠다는 일념으로 창업한 식품회사입니다. 전 회장은 식품과는 인연이 없는 잘나가는 금융업 CEO였습니다. 지금의 삼성생명 전신인 동방생명 부사장을 지낼 정도로 당시에는 잘 나가는 금융맨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남대문 시장을 지나면서 꿀꿀이죽을 먹기 위해 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고 식품업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일본으로 건너가 라면기술을 습득하고 돌아와 1963년 라면을 생산했지만 처음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얼큰한 맛을 가미해보라는 조언을 듣고 개발한 삼양라면이 대 히트를 치면서 대표적인 식품회사로 자리메김합니다. 이후 삼양라면은 라면의 대명사가 됐고 국내 라면 업계 1위 타이틀을 오랫동안 차지합니다. 그러나 롯데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신춘호 회장이 농심라면을 내세우면서 라면업계의 판도가 달라집니다. 엎친데 덥친격으로 ‘우지파동’이 일어나면서 삼약식품은 기업의 존폐 위기로까지 몰리게 됩니다. 우지파동이란 1989년 공업용 우지 즉 쇠기름으로 면을 튀겼다는 익명의 투서로 시작돼 서울지방 검찰청에서 수사를 하고 온갖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면서 일파만파를 일으킨 사건입니다. 특히 소비자단체와 언론에서 온갖 괴담을 쏟아내며 우지를 사용하는 회사를 악덕기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파동으로 삼양식품은 직격탄을 맞게 됩니다.당시 삼양식품 측에선 20년동안 사용해도 인체에 아무런 해가 없고 정부에서도 권장했었던 사안이라고 주장해도 누구하나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최근에 일어난 광우병 사태나 사드 전자파 공포와 비슷한 양상이었습니다. 정부에서 인체에 무해하다는 공식 발표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8년후 모두 무죄가 나고 인체에 해가 없다는 판결이 났지만 회사는 망신창이가 된 뒤였습니다.

저는 대법원 선고가 있은 직후 전중윤 선대 회장을 서울 종로구청 곁에 있던 당시 삼양식품 본사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때 노  회장은 눈시울을 붉히며 ‘다 지나간 뒤에 판결이 나면 뭐가 달라질게 있느냐’고 했던 기억이 남습니다. 그때 누가 투서를 했는지 투서와 동시에 바로 수사가 이뤄진 사실과 시민단체와 언론은 왜 한쪽 주장만을 대서특필했는지 의문이 남는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사태 이후 삼양라면은 급속하게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삼양라면은 농심한테 밀리기 시작한 것은 사실입니다.

농심에서 신제품 개발과 함께 대대적인 홍보전으로 삼양라면의 아성을 무너뜨렸던 것입니다. 이후 삼양식품은 지금까지 농심에 라면업계 1위를 내주어야 했고 삼양식품은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사세가 급격히 위축됐고 종로구청 옆에 넓었던 사옥을 파는 등 자구노력을 했으나 결국 부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2005년 법정관리를 종결했지만 여전히 삼양식품은 예전의 영광을 찾을 수 없었고 2014년 삼양식품 창업주인 전중윤 회장은 타계하고 말았습니다. 삼양식품이 이런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등장한 이가 바로 전인장 회장의 부인인 김정수 부회장입니다.

전인장 회장은 전중윤 창업주의 장남으로 1994년 김 부회장과 결혼했습니다. 1998년 IMF여파로 삼양식품이 부도가 나자 김정수 부회장이 나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외부에선 남편을 돕고자는 단순한 참여 정도로 생각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전 회장과 결혼한 김정수 부회장은 이북출신의 부모와의 사이에 태어난 그야말로 평범한 집안 출신으로 재계에서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서울 예고와 이화여대를 졸업했다지만 그때까지 단순한 재벌가 며느리중 한사람 정도였습니다. 가정 살림만 하다 경영 일선에 나서 경영인으로 변신했으니 그런 시선은 어쩌면 단연한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김 부회장의 경영 합류는 시아버지인 전중윤 창업 회장의 적극적인 권유도 한 몫했다고 합니다. 전 창업 회장은 예술고등하교 출신인 맏며느리의 미적 감각과 마케팅 능력을 높이 사 경영에 합류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김 부회장은 입사하자마자 삼양라면의 패키지 디자인을 도맡아하고 ‘갓 짬뽕’ ‘맛있는 라면’같은 이름도 직접 지었습니다.

김 부회장의 능력이 돋보인 것은 삼양식품의 효자상품으로 자리 잡은 ‘불닭볶음면’을 개발해 낸 일입니다. 2012년 출시된 불닭볶음면은 그야말로 삼양식품을 구해낸 대표 상품입니다. 당시 고등학생인 딸과 함께 서울 명동을 걷다가 매운 음식을 파는 매장에 긴 줄이 서있는 것을 보고 착안해 만든 제품입니다. 김 부회장은 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직원들과 전국을 돌며 불닭 불곱창 닭발 맛집을 찾아 다녔고 세계 여러 고추와 페퍼소스를 연구한 끝에 강한 매운맛을 라면에 적용할 수 있었다고 후일 밝힌 적이 있습니다. 지난해까지 불닭 브랜드의 누적 판매량이 50억개에 육박한다니 그 인기가 얼마인지는 가늠하고도 남습니다. 불닭시리즈는 단순한 국내 판매를 넘어 이제 세계 라면시장을 주름잡는 대표상품으로까지 자리매김했습니다. 2015년엔 수출이 3백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는 6천억원이 넘을 정도로 대 히트를 쳤습니다. 김 부회장은 불닭 시리즈의 제품 라인업을 나라별 맞춤 전략을 통해 확대하고 있습니다.

흔히 얘기하는 K푸드의 대표 상품으로 불닭시리를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겠다는 야심찬 포부입니다. 김 부회장은 기업 경영만이 아니라 배짱도 두둑한 여걸로 통한다고 주변에선 얘기합니다. 남편인 전인장 회장은 오히려 신중한 면이 있지만 김 부회장은 강단이 있다는 평가입니다. 시누이들과의 갈등을 조정한 일이나 남편이 관심을 보였던 외식사업을 접고 라면 하나로 승부를 걸자는 뚝심에서 그의 강단을 엿볼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남편을 대신해 대표이사를 직접 맡아 경영 최일선에서 진두지휘하는 모습에서 그의 일면이 잘 드러났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김 부회장은 2019년 남편인 전인장 회장과 함께 횡령 혐의로 전인장 회장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했고 본인은 집행유예 3년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 형 확정으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가 경영공백으로 회사가 어렵다며 법무부에 취업 승인을 요청했고 법무부가 받아들이면서 바로 경영에 복귀하게 된 것입니다. 김 부회장의 경영 복귀를 놓고 일부에선 도덕적해이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으나 그 만한 경영인이 없기 때문에 수긍한다는 긍정론도 있었습니다. 김 부회장의 강단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경영에 복귀하면서 조직개편을 단행했고 이후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대표이사로 선임됐습니다.

자신의 책임하에 경영을 총괄하겠다는 의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 김 부회장은 단순한 재벌가 며느리 대표이사가 아닌 주식 보유에서도 명실 상부한 총수로 자리잡았습니다. 사실상 지주회사 격인 삼양내츄럴스 지분 32%를 소유한 최대 개인주주입니다. 남편인 전인장 회장보다 더 많은 주식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평범한 재벌가 며느리에서 경영인으로 변신해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종합 식품 회사라지만 라면 의존도가 너무 높아 상품 다양화가 관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닭시리즈의 비중이 심한 것도 넘어야 할 산으로 평가 받습니다.

오늘은 평범한 재벌가 며느리에서 기업 총수로 변신해 제2의 르네상스를 일구고 있는 삼양식품의 김정수 부회장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혹자는 그를 혹평하는 이들도 있지만 삼양식품을 진두지휘하며 라면의 세계화에 앞장서는 것은 분명 평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라면 하나로 매출액 1조원 시대를 열고 있는 김정수 부회장의 다음 행보는 또 어떤 그림이 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1 ماه پیش در تاریخ 1402/05/15 منتشر شده اس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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