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범음집 3판 출간

범패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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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هزار بار بازدید - 5 سال پیش - 연락처 : 010-3842-10401. 재의식편 :
연락처 : 010-3842-1040
1. 재의식편 : 천도의식. 종사영반. 상용영반, 관음시식, 구병시식 등
2. 해설편 : 의식문 자체가 한자로 되어있는바 모든 의식 전문을 한글로 해설
3. 악보편 : 옹호게, 거불성, 바라무, 사물장단, 각종진언 사물장단악보

영산범음집 한 권만으로 모든 재의식을 집전할 수 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진행하면 끝나게 되어있고 A4 320페이지 이중배접 특수지로 책을 펴놓아도 그대로 있 습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엔 2판까지 출판하는 동안 범패연구소에 보시하신 수천 명의 스님의 사찰과 명단이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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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무형문화재 제9호 어장(魚丈) 문구암스님
사람이 있으면 일이 있고 일이 있으면 예가 있고 예가 있으면 의식이 있다. (有人 斯有事 有事 斯有禮 有禮 斯有儀)하여 모든 일에 일정한 의식절차가 가장 우선한다 했으니 범패성명도 이로서 모든 의범의 근간이 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음률이 갖는 공능은 개인적 또는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고대 성현들이 치도(治道)의 요체로 삼았다. 이러하므로 종교에서 갖는 음악 또한 등한히 할 수 없음은 물론, 까다로운 교리해설이나 동문서답의 공론이 결코 종교의 본분이 아니고 속진(俗塵)을 초탈한 쇄연(灑然)한 범천의 경계에 이른 이 범패성명이 곧 종교의 진경계(眞境界)를 여실히 나타낸 것이라고 본다.

출요율의(出曜律儀)에 이르기를 범패를 일명 지단(止斷) 또는 지식(止息)이라고 하는바 이것을 소리함으로서 일체의 외연(外緣)을 지식하고 적정안온(寂靜安穩)의 경지에 도달하여 명경지수에 달그림자 비추듯이 모든 법사를 진행한다고 되어있다. 이것이 범패의 참뜻을 잘 표현한 것이라고 보인다. 그러므로 범패 그 자체가 선정이며 성불의 기반이라 보고 도구로 삼아 수련하였으니 이 범패성명은 단순한 불교음악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예술임과 동시에 훌륭한 종교인 것이다.

신라말기의 고승인 진감선사(眞鑑禪師)로부터 시작된 범음범패는 고려조와 조선왕조를 거쳐 현대로 이어 왔지만 고려조는 문헌이 없어 잘 알기 어렵지만 고려의 역대 왕들은 백좌도량(百座道場)을 회경전(會慶殿)에 설(設)하고 인왕경(仁王經)을 강(講)하여 궐정(闕庭)에는 반승(飯僧)일만이며 주부(州府)에도 반승 이만을 헤아리는 등 대규모의 도량(道場)을 차렸기 때문에 그에 따른 범패의 성행도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그러나 고려조의 범패는 그 의식절차나 게송의 가사 그리고 범패의 음악은 그 편린조차 파악할 길이 없다. 더욱이 고려조의 범패는 신라의 진감선사가 남긴 제도를 계승하였다는 언급조차 문헌에는 보이지 않는다.

조선왕조에 들어서는 고려조와는 반대로 불교보다 유교가 성했으나 오히려 범패에 관해서는 상세한 자료들이 다수 남아 있다. 영조 24년 무진년 전라도 장흥 가지산 보림사의 대휘화상이 찬술한 범음종보(梵音宗譜)에 의해 조선왕조 중기까지의 범패의 계보가 파악된다. 조선왕조 초기에는 국융(國融)이란 어장이 있어 그의 애완한 아름다운 소리는 일국을 풍미(風靡)하였고 제이세 응준. 제삼세 혜운. 제사세 천휘. 제오세 연청. 제육세 상환. 제칠세 설호. 제팔세 운계당 법민. 제구세 혜감이 그의 대를 계사(繼嗣)하였다. 혜감에 이르러 낙안 등광사의 순영 등 많은 제자가 배출되어 경상 전라도의 거찰에 범패가 퍼져 나갔다.

혜감에 이르러 문정(門庭)이 번성하여 그의 제자가 경상 전라의 거찰에 퍼져 사손(嗣孫)이 승승불절(繩繩不絶)하였으며 이 제자들이 경상 전라의 거찰에 범패를 보급하였다. 이중의 하나는 경산(京山)중심의 이른바 기호(京畿.湖南)소리인 경제(京制:윗녘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대구 팔공산 이남의 영남지방(嶺南地方)에 퍼진 이른바 팔공산소리인 영남제(嶺南制:일명 팔공산제:아랫녘소리)이다. 이 팔공산제중 통도사와 범어사의 범패가 두드러져 소위 통범소리라 불리우며 또한 경남에서는 고성 옥천사소리와 통영 안정사소리가 해방 전까지도 맥을 이어오다 오늘날은 그 원전들의 출처가 거의 사라지고 이름만 회자할 뿐이다. 경제와 영남제의 범패가 본질적인 차이는 없으나 소리의 내용상 전혀 다르다.

아랫녘의 마지막 남아 있는 유장(悠長)한 소리인 통범소리는 그 본거지를 동래 금정산 범어사에 두고 있다. 혜감의 법손 이후의 유제가 어떻게 계승되었는지는 살펴볼 자료가 미약하나 범어사에서는 백여 년 전부터 대산스님, 호산스님이 통도사는 임설운스님, 월요스님 등이 범패를 지도하는 어장으로 있었으며 범어사에 어산회를 조직하고 그 기념으로 범어사 어산교(魚山橋)를 준공하기도 했다.

또한 광무원년(서기1897년) 범음요집(梵音要集)을 간행, 내용을 기술하였으며 1942년에는 대산스님의 육필로 대산집(大山集)을 남겨 통범소리 계승에 주력하였고. 해방 후 어산회를 통해 범패를 연수하셨다. 이에는 대산스님, 안관해 스님의 제자인 용운(龍雲)스님과 죽산(竹山)스님이 범패를 지도하였다. 범어사의 어장 안관해스님과 대산스님의 유제를 용운스님이 잇고 또 그 맥을 부산불교어산회에서 계승하여 오늘날에도 그 명맥이 끊이지 않았다.

1972년 10월 20일 용운스님(俗名:金祥祐)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범패 전승의 기틀을 마련하고 윗녘은 이듬해 1973년 국가중요문화재 제50호로 지정받았다. 용운스님이 지도 전수한 제자로 어산회에 속했던 구암(九菴) 문영호(文瑛浩)스님, 혜륭(慧隆) 조병태(趙炳台)스님, 응산(應山) 박유선스님과 바라의 청공(晴空) 신석갑(辛錫甲)스님, 작법무의 해강(海崗) 김영규(金英奎)스님 등이 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받아 고령에도 불구하고 후학을 위해 강원을 열어 통범소리의 명맥을 유지하여 많은 이수자와 전수자를 배출하고 있다.

이후 1997년 용운스님의 맥을 이은 제자 중 한 분인 구암스님이 범음요집과 대산집을 토대로 현대에 맞게 재편집하여 영산범음집(靈山梵音集)을 출간하였으며 우리나라 범패.가영 역사상 처음으로 영남범음범패 카세트테이프(20개)와 비디오테이프(3개:대령,관욕,전시식,배송)를 범패연구소와 함께 제작하여 올바른 불교의식과 범음범패(梵音梵唄)를 보급하기위해 칠순 고령에도 혼신을 다해 쇠잔(衰殘)한 기운을 다하시고 2002년 봄 입적(入寂)하셨으니 세수(歲數) 76이며 적하(積夏)는 65이셨다. 더욱이 스님의 범패성(梵唄聲)은 우아(優雅)하기가 그지없고 애완(愛婉)하기가 제천(諸天)이 감응할 정도였다. 오늘날도 나라안팎의 수많은 스님의 사표(師表)로 남아계신다.
범패연구소 졸납 현담 이판암 합장
#범패 #영산범음집 #범패연구소
5 سال پیش در تاریخ 1398/09/21 منتشر شده اس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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