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 토요명품공연[2016.06.11.] 01. 종묘제례악

국립국악원[National Gugak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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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1 هزار بار بازدید - 8 سال پیش - 01. 종묘제례악 '전폐희문·희문·기명·역성·소무·독경·영관'종묘제례악은 동북아시아의 고대
01. 종묘제례악 '전폐희문·희문·기명·역성·소무·독경·영관'
종묘제례악은 동북아시아의 고대 아악과 한국 전통 음악을 조화시킨 15세기 창작품으로
오늘까지 역사적 단절 없이 연주되어 온 한국음악 최고 명작 중의 하나이며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이다.

1425년(세종 7) 세종대왕은 친히 종묘에 제향하고 환궁한 뒤 이조판서 허조(許稠)에게 "종묘대제에 먼저 당악(唐樂)을 쓰고 겨우 종헌(終獻)에서야 향악(鄕樂)을 쓰니 앞으로는 조고 신령(祖考神靈)께서 생시에 익히 들으시던 향악으로 아뢰게 하는 것이 어떠할지 맹사성(孟思誠)과 의논하라"고 하였고, 중국 음악이론가 박연(朴堧)과 사대적(事大的) 유신(儒臣)들의 반대 속에서도 "우리의 향악을 버릴 수 없다"라는 굳은 의지로 마침내 1435년(세종 17) 우리의 향악으로 《보태평(保太平)》 11곡(曲)과 《정대업(定大業)》 15곡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것이 처음에는 제사음악이 아니고 조종(祖宗)의 공덕을 기리고 개국 창업(開國創業)의 어려움을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국초(國初)의 고취악(鼓吹樂)과 향악을 참작하여 만들었던 것이며, 이것이 종묘의 제례악으로 채택된 것은 1463년(세조 9)이었다. 세조는 "《정대업》과 《보태평》은 그 성용(聲容)이 성대하므로 종묘에 쓰지 않음은 가석(可惜)타"(세조실록)하여 최항(崔恒)에게 명하여 간단히 간추려 고치게 한 후 제례악으로 채택케 하였다.

이와 같이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된 《보태평》과 《정대업》은 500여 년 동안 전승되면서 변화는 있었지만 현재까지 연주되고 있다. 《보태평》은 조종(祖宗)의 문덕(文德)을 내용으로 한 것이고 《정대업》은 무공(武功)을 내용으로 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종묘제례악의 연혁 (두산백과)

연주와 노래(악장), 춤(일무)이 일정한 유교 제례의 절차에 따라 펼쳐지는
고유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문덕을 기린 보태평(문무) 11곡과 무공을 칭송한 정대업(무무) 11곡으로 구성되어 있고
아악·당악·향악기가 함께 연주한다.
2001년 5월 18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집사/황규상, 집박/양명석, 악장/김병오·홍창남
○ 피리/이영·김성진·홍현우(태평소)·김철·이종무·민지홍, 대금/이상원·김상준·최성호·문응관·김기엽·이결
○ 해금/황애자·김주남·류은정·전은혜·공경진·한갑수, 가야금/조유회·이유나·고연정, 아쟁/김인애, 거문고/김미숙·이방실·박지현
○ 편종/윤성혜, 편경/이건회, 방향/장경원, 장구/박거현, 절(진)고/안성일, 징/홍석복, 축/김창곤, 어/고보석, 휘/조일하
○ 문무/최형선·김진정, 무무/정현도·김서량

○  주최 및 촬영/국립국악원[National Gugak Center]
8 سال پیش در تاریخ 1395/03/26 منتشر شده اس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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