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신화의 종말, 러시아 원정(신화는 만들기는 어려워도 깨지는 건 한 순간!) / 배은숙의 호락호락한 세계사 44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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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 هزار بار بازدید - 9 ماه پیش - 나폴레옹 신화의 종말, 러시아 원정(신화는
나폴레옹 신화의 종말, 러시아 원정(신화는 만들기는 어려워도 깨지는 건 한 순간!) 편입니다.  나플레옹은 코르시카라는 작은 섬에서 거의 평민과 같은 하급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파리로 유학 와서 파리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때 나이가 16살, 우리나라 나이로는 17살입니다. 17살 때 포병 소위로 임관했는데 프랑스 혁명으로 전설적인 전쟁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804년, 나폴레옹은 황제가 되었습니다. 신분제 사회에서 1 %의 가능성도 없는 이 평민이 황제가 된 것입니다. 이후 나폴레옹의 발 아래 전 유럽이 무릎을 꿇었지만 영국만은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제국을 아들에게 넘겨 주고 싶었지만 조세핀은 마흔 다섯살이 넘도록 임신을 하지 못했기에 조세핀과 이혼하고 오스트리아 여성 마리 루이즈와 재혼했습니다. 나폴레옹이 마리 루이즈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파리 시민들의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또 오스트리아 여자야?" 시민들은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떠올렸던 겁니다. 이렇게 민심과 점점 멀어지는 상황에서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을 떠났습니다.

1. 러시아 원정의 배경
러시아의 유명한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1812년 서곡'을 작곡했습니다. 이 곡 나폴레옹 몰락을 기념하는 곡이었습니다. 그만큼 러시아 사람들은 나폴레옹을 방어해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작품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왜 러시아 원정을 떠났을까요? 모든 유럽 국가가 나폴레옹의 발 아래 무릎을 꿇었지만 영국은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군이 영국의 넬슨 제독과 한 판 붙게 되는데 이것이 트라팔가 해전입니다.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군은 처참하게 패했고 무력으로 영국을 굴복 시킬 수 없게 된 나폴레옹은 경제적으로 굴복 시키기 위해 1806년, 대륙봉쇄령을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 대륙봉쇄령을 어기고영국과 밀무역을 했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굉장히 후진국으로 농업 위주의 국가였는데 영국에 밀무역을 해야지만 공산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이 러시아를 응징하러 갔던 원정이 러시아 원정입니다.

2. 러시아 원정의 시작(지옥의 문이 열렸다}
러시아 원정에 대해 당시 많은 참모들이 나폴레옹을 말렸지만 나폴레옹은 확신에 차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모스크바로 출발한다. 한 두 번의 전투로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고 러시아 황제는 내게 무릎을 꿇고 애걸할 할 것이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정예군 20만 명과 독일,  폴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크로아티아 등 동맹국에서 차출된 군인들을 합쳐 60만 명을 소집했습니다. 때는 6월이었는데 러시아의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탈진하거나 열사병에 걸리거나 탈령하는 병사들이 속출했습니다. 때문에 전투도 하기 전에 병력 수는 25%나 감소했습니다. 이때 러시아의 황제는 알렉산드르 1세였는데 러시아군 총사령관으로 쿠투조프를 임명했습니다. 이 쿠투조프의 군대와 나폴레옹 대군은 보르디노에서 마주쳤습니다 보르디노 전투의 결과는 말 그대로 '상처뿐인 승리'였습니다.  이틀에 걸친 포격전으로 러시아군 사상자가 4만 5천 명, 프랑스군 사상자가 4만 명에 달했으니 말입니다.

3. 모스크바 입성과 퇴각(죽음의 행군은 시작되었다)
나폴레옹 군대가 모스크바에 도달했을 때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모스크바는 텅텅 비어 있었고 대화재로 불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9월 15일부터 20일까지 총 닷새 간에 걸쳐서 불은 꺼질 줄을 몰랐습니다. 나폴레옹의 한 부관은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불의 대지 위, 그리고 불의 하늘 아래 불의 두 벽 사이를 걸었다' 러시아는 불을 지름으로서 러시아를 지키려고 했고 이걸 우리는 '초토화 작전'이라 부릅니다. 적군의 수중에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도록 후퇴를 거듭하면서 식량과 가옥을 모조리 태워버리는 전술이입니다. '러시아판 청야전술'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나폴레옹은 겨울이 오기 전에 철수했어야 했지만 35일 동안 그냥 머물러 있는 치명적인 오판을 했습니다. 알렉산드르 1세가 화평을 청해 올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르 1세는 결코 화친할 생각이 없었기에 나폴레옹은 결국 10월 19일 살아 남은 10만 명을 데리고 모스크바에서 떠났습니다. 이 퇴각은 말 그대로 죽음의 행군이었습니다. 쿠투조프 사령관은 베레지나 강에서 프랑스 대군을 완전히 몰살 시킬 계획이었습니다. 다리가 폭파했고 프랑스 대군을 포위해 섬멸할 생각이었습니다. 프랑스 전투 공병의 활약으로 나폴레옹군은 겨우 강을 건널 수 있었지만 러시아의 동장군과 코사크 기병대의 습격으로 또 다시 수만 명의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때문에 나폴레옹이 복귀했을 때는 6개월 전 강을 건넌 60만 명 중에 겨우 3만 명만이 살아 돌아왔습니다.

4. 나폴레옹의 몰락
1814년 3월 31일 러시아, 프로이센, 영국으로 구성된 반불 동맹군이 파리에 입성했습니다. 여기에 나플레옹의 장인인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1세마저 합류하자 나플레옹은 좌절했습니다. 이때 나폴레옹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1년 전에는 전 유럽이 우리와 함께 진군하고 있었다. 오늘은 전 유럽이 우리를 향해 진격하고 있다" 나폴레옹은 결국 퐁텐블로 성에서 왕관을 내려놓고 엘바섬으로 추방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곧 엘바섬을 탈출했지만 100일 천하로 끝났습니다. 영국은 나폴레옹이 더 이상 탈출하지 못하도록 남대서양 한가운데에 있는 세인트헬레나섬에 가두었고 여기서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나의 프랑스, 나의 군대, 나의 조세핀" 나폴레옹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남긴 유언입니다. 프랑스가 사랑했고, 프랑스 군대의 모든 병사들이 영웅으로 추앙했던 나콜레옹의 신화는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신화는 만들기는 어려워도 깨지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그 순간이 언제일까요? 배은숙의 호락호락한 세계사  44RM. 나폴레옹 신화의 종말, 러시아 원정(신화는 만들기는 어려워도 깨지는 건 한 순간!)을 경청해 보시고 답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_ 일상의 인문학(‪@kbcthink‬)  

[Chapters]
00:00 하이라이트
03:46 1. 러시아 원정의 배경
06:49 2. 러시아 원정의 시작
14:18 3. 모스크바 입성과 퇴각
27:14 4. 나폴레옹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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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ماه پیش در تاریخ 1402/07/21 منتشر شده اس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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