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한국사전 – 몽골 두 번 격파하다, 고려영웅 김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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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سال پی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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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후. 그는 누구인가?13세기, 세계
- 김윤후. 그는 누구인가?
13세기, 세계 역사상 유래없는 강력한 정복전쟁이 몽골에 의해 진행되고 있었다. 몽골은 40여 년 동안 무려 여섯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하는데. 몽골이 결정적인 패전으로 고려에서 철수한 경우는 단 두 번뿐 이었다. 바로 처인성 전투(1232년)와 충주성 전투(1253년). 그런데 이 두 전투를 이끈 지휘관은 놀랍게도 모두 김윤후였다. 백현원의 승려인 김윤후는 어떻게 두 번이나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
- 처인성 전투 : 화살 하나로 풍전등화의 고려를 구하다
1232년, 고려가 대몽항쟁의 의지를 밝히며 강화도로 천도하자 몽골은 2차 고려 침략을 단행한다. 고려 침략을 이끈 몽골의 장수는 살리타(撒禮塔). 살리타는 몽골군의 총사령관으로 당시 세계 최강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몽골의 핵심인물이었다.
그러나 파죽지세로 고려를 침공해 내려오던 살리타의 운명을 뒤바꾼 일대 사건이 일어난다! 용인군 아곡리에 위치한 처인성.
살리타는 제대로 된 군사조차 남아있지 않은 처인성을 공격하면서 방심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살리타와 몽골군을 향해 화살이 비 오듯 쏟아졌다. 매복한 처인성 부곡민들의
기습 공격이었다. 처인성 안으로 피신한 부곡민들을 모아 매복 전투를 계획하고 적장 살리타를 사살한 인물, 바로 김윤후였다.
- 충주산성 전투 : 백성의 힘을 하나로 모으다
1253년, 고려 조정이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출륙 환도하라는 몽골의 요구를 이행하지 않자, 몽골은 황족인 에쿠(也窟)가 직접 지휘하는 최정예병을 고려에 투입한다.
몽골군은 고려 정벌을 끝내겠다는 각오로 한 층 더 잔인하게 고려를 도륙하면서 전략적 요충지인 충주까지 밀어닥쳤다.
당시 충주에는 살리타를 사살한 처인성 승첩의 주인공, 김윤후가 방호별감으로 있었다. 끝까지 항전하는 김윤후와 몽골군의 싸움은 70여 일을 넘겼다. 그 사이 성 안의 양식이 떨어지고 투항을 원하는 백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아비규환 속에서 김윤후는 결단을 내린다. 그는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노비문서를 불태워버리고 노획한 소와 말을 모두 나누어 주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일어날 수 없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김윤후의 결단에 백성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항쟁한다.
결국 몽골군은 충주에서 퇴각하고 만다.
- 역사에서 잊혀진 대몽항쟁의 영웅, 김윤후
대몽항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지역민들의 신분이 단체로 승격된 지역은 모두 네 곳. 그 중 무려 두 곳의 지휘관이 바로 김윤후이다. 바로 처인성과 충주 지역. 그러나 이런 공적에도 불구하고 김윤후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는 왜 역사 속에 잊혀진 것일까?
몽골 침략 40여 년 동안 고려의 전 국토는 초토화됐다.
부인사 초조대장경, 흥왕사 속장경 등 불교 문화재가 소실되고, 고려는 몽골의 부마국으로 추락해 몽골이 세운 원(元)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약 1세기 동안 원의 간섭을 받는다.
이 기간 동안 몽골에 대한 항전은 곧 반역과 모반의 역사가 되고 말았다. 더욱이 고려 멸망 후 세워진 조선은 유교를 받아들여 승려 출신인 김윤후는 건국이념상 드러낼 수 없는
인물이 되고 만다. 김윤후. 그는 비록 역사 속에서 잊혀졌지만 대혼란 속에서 조국을 두 번 지킨 대몽항쟁의 영웅이었다.
한국사전 13회 – 몽골을 두 번 격파하다, 고려영웅 김윤후 (2007.9.15.방송)
http://history.kbs.co.kr/
13세기, 세계 역사상 유래없는 강력한 정복전쟁이 몽골에 의해 진행되고 있었다. 몽골은 40여 년 동안 무려 여섯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하는데. 몽골이 결정적인 패전으로 고려에서 철수한 경우는 단 두 번뿐 이었다. 바로 처인성 전투(1232년)와 충주성 전투(1253년). 그런데 이 두 전투를 이끈 지휘관은 놀랍게도 모두 김윤후였다. 백현원의 승려인 김윤후는 어떻게 두 번이나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
- 처인성 전투 : 화살 하나로 풍전등화의 고려를 구하다
1232년, 고려가 대몽항쟁의 의지를 밝히며 강화도로 천도하자 몽골은 2차 고려 침략을 단행한다. 고려 침략을 이끈 몽골의 장수는 살리타(撒禮塔). 살리타는 몽골군의 총사령관으로 당시 세계 최강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몽골의 핵심인물이었다.
그러나 파죽지세로 고려를 침공해 내려오던 살리타의 운명을 뒤바꾼 일대 사건이 일어난다! 용인군 아곡리에 위치한 처인성.
살리타는 제대로 된 군사조차 남아있지 않은 처인성을 공격하면서 방심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살리타와 몽골군을 향해 화살이 비 오듯 쏟아졌다. 매복한 처인성 부곡민들의
기습 공격이었다. 처인성 안으로 피신한 부곡민들을 모아 매복 전투를 계획하고 적장 살리타를 사살한 인물, 바로 김윤후였다.
- 충주산성 전투 : 백성의 힘을 하나로 모으다
1253년, 고려 조정이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출륙 환도하라는 몽골의 요구를 이행하지 않자, 몽골은 황족인 에쿠(也窟)가 직접 지휘하는 최정예병을 고려에 투입한다.
몽골군은 고려 정벌을 끝내겠다는 각오로 한 층 더 잔인하게 고려를 도륙하면서 전략적 요충지인 충주까지 밀어닥쳤다.
당시 충주에는 살리타를 사살한 처인성 승첩의 주인공, 김윤후가 방호별감으로 있었다. 끝까지 항전하는 김윤후와 몽골군의 싸움은 70여 일을 넘겼다. 그 사이 성 안의 양식이 떨어지고 투항을 원하는 백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아비규환 속에서 김윤후는 결단을 내린다. 그는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노비문서를 불태워버리고 노획한 소와 말을 모두 나누어 주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일어날 수 없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김윤후의 결단에 백성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항쟁한다.
결국 몽골군은 충주에서 퇴각하고 만다.
- 역사에서 잊혀진 대몽항쟁의 영웅, 김윤후
대몽항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지역민들의 신분이 단체로 승격된 지역은 모두 네 곳. 그 중 무려 두 곳의 지휘관이 바로 김윤후이다. 바로 처인성과 충주 지역. 그러나 이런 공적에도 불구하고 김윤후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는 왜 역사 속에 잊혀진 것일까?
몽골 침략 40여 년 동안 고려의 전 국토는 초토화됐다.
부인사 초조대장경, 흥왕사 속장경 등 불교 문화재가 소실되고, 고려는 몽골의 부마국으로 추락해 몽골이 세운 원(元)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약 1세기 동안 원의 간섭을 받는다.
이 기간 동안 몽골에 대한 항전은 곧 반역과 모반의 역사가 되고 말았다. 더욱이 고려 멸망 후 세워진 조선은 유교를 받아들여 승려 출신인 김윤후는 건국이념상 드러낼 수 없는
인물이 되고 만다. 김윤후. 그는 비록 역사 속에서 잊혀졌지만 대혼란 속에서 조국을 두 번 지킨 대몽항쟁의 영웅이었다.
한국사전 13회 – 몽골을 두 번 격파하다, 고려영웅 김윤후 (2007.9.15.방송)
http://history.kbs.co.kr/
4 سال پیش
در تاریخ 1399/01/08 منتشر شد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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