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오빠Oppa 강릉농악 | Gangneung Nongak #강릉 #강릉농악 #강릉여행 #강릉시농악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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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 بار بازدید - 3 سال پیش - ​‪@강릉오빠Oppa‬  강릉농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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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농악을 영상으로 풀 버전을 담았습니다.

강릉농악은 고대 무천제의 가무악에서 단초를 찾아볼 수 있으나, 조선시대 기록에서도 보인다.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한 성현成俔, 1439~1504은 (차강릉동헌운次江陵東軒韻)에서 “마을마다 퉁소와 북소리 울려 풍년을 즐기노라(村村簫鼓樂豊年).”라고 하여 500년 전 ‘소고악簫鼓樂’ 상황을 엿볼 수 있다. 1466년 윤3월 14일 세조대왕은 강릉 연곡리에 머물며 농가農歌를 잘 부르는 농부들을 모이게 하였다. 양양의 관노 동구리가 최고로 잘 불러 왕명으로 조석반을 먹이고 악공의 예로 가마를 따랐으며, 비단옷을 하사하였다는 내용이 (조선왕조실록) 권38에 전한다. 이 기록은 강릉농악과 농요의 깊은 역사적 관련성을 암시한다.
생육신인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이 1485년 윤4월 11일에 쓴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에는 산신제 때 ‘취생고슬吹笙鼓瑟’한다고 하였다. 또한 강릉 출신 허균의 「대령산신찬병서大嶺山神贊竝書」(1603)에도 잡희雜戱로 산신을 맞이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 연희악이 연주되었다. 1756년 「진경선조선강릉표착기津輕船朝鮮江陵漂着記」는 강릉에 표착했던 일본인들의 기록이다. 음력 5월 8일 동라銅鑼(꽹과리), 대고大鼓(북), 적笛(피리), 종鐘, 정鉦(징), 수비라手飛羅(자바라) 등을 연주하였다는 내용과 자반뛰기춤이나 국화꽃을 꽂은 무당춤, 씨름 등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강릉농악 [江陵农乐]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1928년 강릉단오제를 조사한 아키바 다카시秋葉隆에 따르면, 대관령 산신을 모시러 갈 때 행렬 선두에 태평소, 나팔수 각 2명, 6각(장고 1명, 대고 1명, 피리 1명, 해금 1명, 필률 1쌍)의 세악수 6명이 참가한다. 이들은 4월 보름 영신행차와 5월 5일 단옷날에도 관청과 성황당을 돌았다. 화각전도畵角前導로서 관노가 앞에서 태평소를 불었고, 농악 놀이, 탈놀이와 무당들이 산유가를 부르며 행진을 했다고 한다. 같은 시기인 1928년 단오 때 3만 명이 운집하여 강릉단양운동대회 농악대회가 개최되었다. 일등상은 성산면 유천대, 이등상은 강동면 운산대, 삼등상은 오봉대였다. 1929년 농악 대회에서는 옥천동 농악대가 이등상을 받았다.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1933)에는 무격의 악기 연주와 창우배 잡희로 신을 맞이한다고 기록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강릉농악 [江陵农乐]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1937년에는 강릉단오운동회가 5일간 개최되었으며, 강릉농악대는 33개 단체에 8백여 명이 참가했다. 시내는 말두(30명), 옥거리(25명)·포람(20명)·송정(35명)·공제(25명)·이랠(25명), 정동면은 모솔·하람·경포·느름내에서 각 20명, 성덕면은 자림이·진재·회산·납돌에서 25명 내외, 성산면은 보괭이·무시골·우추리·소암, 사천면은 옘벤·산대월·구렘이·이설당·진리, 연곡면은 송림·행쟁이, 신리면은 새말·방우젱이 등 전 지역에서 20명에서 40명까지 출연하였다. 1938년 동아일보 강릉지국 주최로 제1회 강릉농악대회가 열렸다. 당시 33개 농악대에서 805여명이 참가하였다. 이 대회는 1939년 제2회를 끝으로 열리지 못 하였다.
194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에 구성된 명주군 농악대는 주문진읍 장덕리농악(1965년 편성, 상쇠 최찬환), 주문진읍 향호리농악(1969년 편성, 상쇠 최운식), 옥계면 남양리농악(1942년 편성, 상쇠 최상기) 등이 있었다. 이들 농악대는 정월대보름, 강릉 단오, 김맬 때 등에 연행하였다. 강릉농악은 1961년 제2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출연하였고 1985년 12월 1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1-4호로 지정되었다. 1986년 11월 1일 강릉농악보존회가 결성되었으며, 현재 명예보유자는 박기하, 보유자는 정희철, 전수교육조교로 최동규·차주택·김남수·손호의·서수희가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강릉농악 [江陵农乐]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강릉농악은 동해안과 동해안 인접 경북 지역, 함경도 지역 농악과 연관성이 깊은 영동농악으로 걸립이나농사풀이, 고사반을 하는 두레굿 성격을 지닌다. 강릉 농악 상쇠 계보는 김달식·박기하·정희철 상쇠(현재기능보유자)로 이어지고 있으며, 다른 계보는 이만손·권오선·권태경 상쇠 계보, 신질봉·정선화 상쇠 계보, 신수영·권영하 상쇠 계보, 김용현·조규복 상쇠 계보 등이 있다. 강릉 지역 마을 농악대는 총 7개 단체로 강남동농악대(1950년대 이전 창단, 구 월호평농악대, 대장 강진화), 경포동농악대(1956년 창단, 대장 김대경), 교동농악대(2004년 창단, 대장 조수현), 달맞이농악대(1996년 창단, 대장 정정자), 사천하평농악대(1950년대 이전창단, 대장 허권), 성덕동농악대(1975년 창단 , 대장 권오윤), 홍제동농악대(2007년 창단, 대장 김영랑) 등이 있으며 어린이 농악대도 운영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강릉농악 [江陵农乐]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강릉농악은 국가무형문화재이며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강원 영동 지역 동해안권역에서 발생하여 자리를 잡았다. 정초 무렵 걸립, 고사반, 지신밟기를 할 때 농악을 연행하며, 매년 단오제 신목 행차를선도하며 마을 농악대가 축제를 즐긴다. 강릉농악은 무동춤, 법고와 소고의 상모놀이가 눈여겨볼 만하고, 모심기, 김매기, 타작 등 농사풀이라는 이른바 농식 놀이가 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하면서도 빠르고 회선완전回旋宛轉하는 원시적 농경의례의 제의성과 소박미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강릉농악대의 구성은 25명에서 40명 내외이며, 빠르고 경쾌한 12채 가락에 맞추어 판놀이와 악기 연주를 펼친다. 구성은 농기, 단기, 호적수(날나리, 쇄납) 1명, 꽹과리 3명(상쇠·부쇠·삼쇠), 징수 2명, 장고수 2명, 큰북수 3명, 소고수 8명, 법고수8명, 무동 8명으로 구성된다. 과거에는 화동이 있었고, 열두발 상모수가 포함된다.
강릉농악 가락은 ‘채’라는 용어를 쓰는데 일채, 이채, 삼채, 사채, 길놀이, 굿거리, 질꼬내기(구식 길군악), 12채 등이 있다. 일채는 한 마치로 ‘천부당만부당’이라고 하는데, [마당굿](/topic/마당굿)에서 사용되는 가락으로 매우 빠른 4박(12/8박자)이다. 이채는 2분박 좀 빠른 4박자(4/4박자), 삼채가락은 3분박 좀 빠른 4박자이다. 사채는 3분박 빠른 4박자(12/8박자), 길놀이는 행진할 때 쓰이는 것으로 2분박 조금 빠른 4박자(4/4박자), 굿거리는 춤 출 때 친다. 3분박 느린 4박자(12/8박자), 구식 길놀이 질꼬내기가락은 행진 시 치는데 3분박 보통 빠른 4박자(12/8)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강릉농악 [江陵农乐]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강릉농악대 복색은 기본적으로 삼베모시 중적삼이나 흰 바지저고리를 입는다. 청색조끼에 왼쪽 어깨에 청색 띠, 오른쪽 어깨에는 노란색, 허리에는 적색띠 등 삼색띠를 두른다. 호적수와 농기수는 바지저고리에 청홍황색의 삼색띠를 두르고, 고깔을 쓴다. 상쇠는 상공원이라고도 하는데, 바지저고리에 남색등지기, 삼색띠를 띠며 상모가 달린 벙거지를 쓴다. 꽹과리(꽹매기)채에는 여러 색의 천을 매달아서 흔든다. 부쇠와 삼쇠는 같은 복장에 상모지를 단 벙거지를 쓴다. 징수(징잽이)와 장고수(장고잽이), 북수(큰북잽이)는 바지저고리에 삼색띠를 매고 상모지가 달리지 않은 길이가 짧고 폭이 넓은 퍽상(방망이상모, 말뚝상모)을 단다. 소고수는 ‘소구잽이’라고도 하며, 상소고와 끝소고로 나뉘며 전체를 ‘8소고’라고 한다.
복장은 징수와 같고 수건을 머리에 쓰고 퍽을 단 벙거지를 쓴다. 법고는 ‘벅구잽이’라고 하며, 소고보다 작은 ‘미지기’라는 악기를 들고 나온다. 이들은 태극이 그려진 북을 들며 상모지가 달린 벙거지를 쓴다. 무동은 붉은 치마 노랑저고리에 남색쾌자, 색띠, 고깔을 쓰며, 한손에는 수건을 들고 다른 손으로 쾌자를 잡고 좌우로흔든다. 벙거지는 상모를 칭하는데 소고를 제외하고는 벙거지에 채산이를 한다. 소고는 ‘퍽’, ‘퍽상’, ‘퍽상모 ’, 일명 ‘말뚝상모’를 앞에 단다. 퍽상은 상모 끝에 30㎝정도의 철사를 달고, 문종이를 잘게 썰어 깃털처럼 붙이고 끝에는 붉은 색 꽃을 단다. 고깔은 두꺼운 종이를 여러 겹으로 붙여 만들며, 한지로 오색꽃을 만들어 붙인다.
농악대 춤사위는 남성들로 구성된 무동舞童의 춤사위, 농사풀이에 참가하는 소고(상모)춤사위와 법고(벙거지)춤사위가 있다. 개인놀이로 열두발 상모춤사위, 상쇠춤사위, 장고춤사위 등이 있다. 상쇠는 꽹과리를 들고 채를 8자형 양상치기로 돌리고, 외상모와 양상모, 꼭두상모춤 등 개인놀이를 보인다. 강릉농악 무동은 화려한 청의홍상綠衣紅裳의 복색과 함께 고깔을 쓰고 쾌자를 입고, 수건을 쥐고 좌우로 흔들어 춤춘다. 특히 오른손바닥과 왼손바닥이 서로 마주 보게 하거나 반대로 엇갈리게 하고, 팔을 양 옆으로 벌려서 흔드는 춤을 춘다. 이것은 1800년대 『경도잡지京都雜誌』 「성기조聲伎條」에나오는 ‘여번수女翻手(여자춤은 손바닥을 뒤집는다)’는 표현이 연상된다. 소고춤의 특징적인 모습은 몸을 땅을 보고 앞으로 숙이고, 소고를 앞에서 한 번 치고 좌우로 몸을 틀면서 앞으로 뛰어나가며 춘다. 또한 팔자형으로 양손을 머리 위에서 올렸다가 내리는 춤, 제자리에서 뛰면서 상모를 돌리고 소고를 몸 앞에서 가슴으로 올렸다 내렸다하는 춤 등이 있다. 땅을 발로 차고 고개를 숙였다가 하늘을 우러르는 ‘답지저앙踏地低昻’이나 손발이 서로 대응하는 ‘수족상응手足相應’의 옛 춤사위와 유사하다. 강릉농악에서는 걸립을 덤불놀이, 소고를 두꺼비, 법고를 무지개, 상쇠를 상고님, 끝무동은 오동동, 무동을 청나비라는 은어를 사용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강릉농악 [江陵农乐]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3 سال پیش در تاریخ 1400/08/30 منتشر شده اس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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