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뿐만 아니라 김재규 전문가라는 주진우의 10.26 명품해설 ※팝콘필수※

KBS더라이브
KBS더라이브
1.2 میلیون بار بازدید - 4 سال پیش - #수요명화
#수요명화 #남산의부장들 #최태민
주진우/ 기자
20. 2. KBS1 '더 라이브' 방송 中

구독과 좋아요는 더 라이브를 더더더~ 열일하게 합니다💪
우기 허니가 차려낸 이슈 맛집 더 라이브!
하루의 마무리로 라이브 채팅을 즐겨봐요☕
KBS 1TV 월요일 밤 11시, 화수목 10시 55분 생방송🏃

KBS1, myK, Youtube, Facebook 라이브
📢더 라이브 구독하기(http://bitly.kr/NmDNy)
✍더 라이브 커뮤니티(http://bitly.kr/thcBr)
▶홈페이지 http://program.kbs.co.kr/1tv/culture/...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4051
▶페이스북 Facebook: thelivekbs1
▶트위터 Twitter: kbs1thelive
▶제보 및 의견: [email protected]

* 인터뷰 내용을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KBS '더 라이브'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주진우: 저는 이명박 전문가 맞습니다만, 김재규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제가 한국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 10.26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을 오랫동안 취재했고요. 김재규 장군 재평가 추진위원회에서 의뢰 받고 김재규, 김재규 씨 측 가족들도 저한테 평전을 의뢰해서 제가 평전을 쓰기도 했습니다. 완성은 못했습니다. 완성을 못했으나 오랫동안 제가 김재규 평전에 노력을 취재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남산의 부장들'이란 영화가 굉장히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 10.26 사건이 재평가되고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도 있어서 이 사건과 이 내용을 준비했습니다. 수요명화 제 2화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배우 이병헌이 연기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야기입니다.
■ 한상헌: 똑같네요
■주진우: 바로 외부인한테는 철저히 가려져 있던 비밀 장소 안가입니다. 궁정동 안가. 주로 연회가 있었습니다.
■ 한상헌: 이곳에서요?
■ 주진우: 네 룸살롱 겸용으로 이용되던 청와대 룸살롱입니다. 1979년 10월 26일 그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최욱: 실제 김재규 씨군요
■ 한상헌: 현장 검증 자료영상이군요.
■주진우: 먼저 차지철을 쏘았죠.
■ 최욱: 저희 어머니도 많이 울었던 걸로 저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김재규라는 인물은 중앙정보부장이잖습니까. 중앙정보부라는 건 지금 없으니까
■ 주진우: 지금은 국정원인데요
■ 한상헌: 국정원이군요
■주진우: 전신은 중정이었는데 그때 중앙정보부와 지금 국정원의 힘의, 힘의 비율은 어마어마하게 다르죠. 그때는 중정 요원이, 말단 요원이 서울지검장, 검사장 책상에 앉으면 다리를, 다리를 책상 위에다 올려놓고 앉았습니다.
■ 한상헌: 말단 직원이요?
■ 주진우: 말단 직원, 그리고 말단 직원이 도지사한테 행정지도를 하고 그리고 모든 평가가 중정으로부터 비롯됐기 때문에 힘이 막강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원하는 재산은 마음대로 뺏을 수 있었습니다. 중정으로 인해서 그래서 정수장학회도 사실 강탈해 간 거였고요. 그다음에 박 대통령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저 애 누군가? 그러면 그날 저녁에 아까 안가 연회에 바로 불려오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있었습니다. 다 중정의 힘이었습니다.
■한상헌: 이 남산의 부장이 중정이 남산에 있었기 때문에 중정 부장을 남산의 부장이라고 불렀다고
■ 주진우: 그때 뭐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나 대모하던 학생들, 남산에 끌려갔으면 뭐 거의 초죽음이 돼서 나오곤 했죠
■ 최욱: 그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요직에 있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왜 총을 겨눈 겁니까?
■주진우: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일단 박정희 그리고 경호실장 차지철, 그리고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세 명의 역학관계를 자세히 짚고 넘어가 봐야 될 것 같습니다. 그날 김재규는 왜 총을 들었을까요
■주진우: 당시 박 대통령에게 두 명의 최측근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입니다. 박정희의 고향 후배이자 육사 동기였는데요. 박정희 대통령이 존경할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대통령 다음으로 최고 권력이라는 중앙정보부장 부장에 앉혀서 그  누구보다도 총애했고요. 대통령에게 충성심도 대단했습니다. 권력의 핵심이었죠. 그런 김재규의 앙숙이 있었습니다. 바로 막가파식이었던 경호실장 차지철이었습니다.
■ 한상헌: 쿠데타 시절부터 줄곧 옆에 있었군요
■ 주진우: 사사건건 다퉜는데요, 두 사람은 그 두 사람의 권력다툼이 10.26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전두환 신군부가 그렇게 평가 절하했었는데요. 하지만 김재규의 다른 시각도 있습니다. 1972년 유신 헌법이 선포되면서 영구 독재를 꿈꾼 박정희, 민주화의 목소리는 박정희에게 들리지 않았는데 그때부터 김재규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은 김재규는 결심하게 됩니다. 자신의 생각을. 1979년 10월 26일 거사를 치릅니다. 철옹성 같은 유신독재들을 직접 무너뜨리기 위해서였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 최욱: 박정희 당시 대통령 옆에 김재규, 차지철이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건데, 아니 그런데 김재규 부장이 더 선배고 더 고위직 같은데 왜 박정희 대통령은 차지철을 더 좋아했을까요?
■주진우: 더 좋아한 건 아니고요. 경호 실장이어서 대통령과 더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 한상헌: 물리적으로도.
■ 주진우: 네 그래서 김재규 부장의 생각과 정책을 자꾸 태클을 걸곤 했죠. 가까운 거리에서 그렇다고 해서 차지철을 편애했다고 볼 순 없습니다.
■ 한상헌: 실제로 권력다툼의 가능성을 낮게 보시는 건가요 주진우 기자님은  
■ 주진우: 권력다툼이라고 전두화 신군부에서는 얘기했는데 이 평가는 김재규의 거사를 평가절하하기 위한 그런 생각이었고요 사실 김재규의 생각을 박정희 대통령이 많이 받아줬었는데 강경파인 차지철, 온건파인 김재규, 계속 균형을 잡다가, 균형을 잡다가 차지철 쪽으로 기울었다고 균형추가 기울었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 최욱: 혹시 그렇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습니까?
■ 주진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최태민과 박근혜 그러니까 영부인 역할을 하던 박근혜.  최서원 씨의 아버지를 얘기하는 거죠. 그 문제를 가지고 큰 문제가 있으니, 큰 문제가 있으니 바로 잡아야 된다고 보고서를 씁니다. 그때 최 아무개 국장을 시켜서 보고서를 썼는데 중정이 미행 도청 감청이 다 가능했는데 아주 상세한 최태민의 비위 보고서를 써서 대통령께 직보를 하죠. 그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최태민과 박근혜 씨를 불러서 친국이라고 하죠 직접 그 문제에 대해서 묻습니다. 그런데 그때 중앙정보부의 보고서와 김재규의 충언, 직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박근혜, 최태민을 그대로 두죠
■ 한상헌: 오히려 격상시키죠
■ 주진우: 네, 그러면서 약간 권력에서 밀렸다. 이렇게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 한상헌: 그런데 이번에 10.26에 대해서 다르게 보는 사람들은 (김재규가) 재판 최후 진술에서 밝혔다시피 독재 청산과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 한 행동이었다. 본인 스스로 혁명이라고 불렀잖아요
■ 주진우: 네, 그렇습니다. 신군부에서 집 압수수색을 했을 때 집에서 민주주의, 자유, 인권 이런 붓글씨가 많이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유신독재가 시작됐을 때부터 박정희 대통령을 자기가 시해하고 자기가 독재를 끝내겠다는 생각을 해서 군단 시절에 그리고 권교부 장관 시절, 자기가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할 생각을 했다. 거사를 꿈꾸기도 하고 계획을 세웠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정황증거가 남아있는 것을 보면 이분이 오랫동안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끝내겠다는 생각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최욱: 혁명으로 보는 관점도 있겠습니다만 또 일각에서는 권력욕으로 보는 관점도 있지 않습니까
■ 한상헌: 본인이 주인공이 되고 싶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
■주진우: 그렇죠 2인자였으니 1인자를 꿈꿀 수도 있고 1인자를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기가 그 생각을 했겠죠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후에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중정으로 가지 않고 육본으로, 육군에게 갑니다. 그 상황이 자기가 그 쿠데타가 아니고 쿠데타가 아니라 자기는 의로운 일을 했다. 여기에서 자기 역할을 끝내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 한상헌: 자진 출두했다고 이야기하는 거죠
■ 주진우: 네, 그렇습니다. 본인이 쿠데타 본인이 정권을 다시 이어받는다면 이거는 쿠데타와 다름없다. 자기는 그런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고 했고 자기 부하직원들한테도 이 거사를 알리지 않았어요. 그 몇몇한테도 몇 시간 전에 알린 걸로 보면 쿠데타나 다른 생각, 권력욕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 한상헌: 알겠습니다.
■ 최욱: 다음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면 자기가 주도할 수 있는 중정으로 갔을텐데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는 보기 어렵다는 거네요
■ 한상헌: 해석이 있을 수 있다.
■ 주진우: 네 그렇습니다.
■한상헌: 10.26 사건 분명히 역사적으로 굉장히 큰 현대사 사건이지만 지금 현재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뭘까요
■ 주진우: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박정희 권력, 박정희는 거의 왕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었지만 거의 왕과도 같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박정희 체제의 붕괴는 우리의 우리나라 민주주의 어떻게 보면 큰 진전이었고요 진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사실 민주화 운동이 박정희의 독재.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나, 부정부패에 대한 반발 반대를 민주화 운동이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독재를 끝낸 김재규의 거사. 이걸 어떻게 볼까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논쟁으로 남아있지만 저는 민주주의의 큰 진전이라고 보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4 سال پیش در تاریخ 1398/11/20 منتشر شده است.
1,235,093 بـار بازدید شده
... بیشت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