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페셜 – 백제사 최대 미스터리, 서동설화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KBS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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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9.4 هزار بار بازدید - 5 سال پیش - - 온 국민의 러브스토리 서동설화,
- 온 국민의 러브스토리 서동설화, 그 주인공은 누구인가?
지난 2009년,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을 위한 7년간의 해체 작업 중 국보급 유물들이 탑의 중심부에서 발견됐다. 백제 문화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걸작들 중 학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단연 미륵사 창건에 관한 기록이 적힌 금제사리봉안기이다. 사리봉안기의 해석으로 서동이 백제의 왕이 된 뒤 선화공주의 발원으로 미륵사를 지었다는 ‘서동설화’의 사실여부에 학계의 논란이 불거졌다. 선화공주에 대한 기록이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서동설화의 주인공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기존의 통설인 서동 ‘무왕설’을 뒤엎는 새로운 주장들이 제기됐다. 풀리지 않는 서동설화의 미스터리, 진짜 서동은 누구일까?

-‘서동’을 둘러싼 학계의 진실공방!
▶무령왕, 그는 서동인가?
백제 역사상 신라와 가장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던 무왕.
계속되는 전쟁 중에 신라 공주와의 혼인과 미륵사와 같은 대규모 사찰의 건축이 가능했을까? 백제사를 연구하는 사재동 교수는 무강왕이 백제 부흥을 일으킨‘무령왕’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 무강왕의 ‘康(편안 강)’은 ‘寧(편안할 령)’과 뜻이 상통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륵사지 석탑 사리봉안기의 기해년 명문은 무령왕의 재위 기간에도 해당된다.

▶또 다른 서동, 동성왕!
[삼국사기]에는 백제 동성왕이 신라 고위관료의 딸과 혼인한 기록이 등장한다.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대비하여 백제·신라 간의 동맹을 맺은 동성왕의 어릴 적
이름은 모대,모도로 서동의 우리말 음인 ‘맛동’과 흡사해 또 다른 서동으로 거론된다.

서동설화의 고장인 익산. 백제의 익산천도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무왕에게 익산은 국가경영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그러나 국립김해박물관의 박중환 학예실장은 웅진시기에 이미 동성왕의 익산경영이 이루어졌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익산 출토의 파문수막새가 공주 공산성의 파문수막새와 거의 동일한 양식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동성왕과 익산은 어떤 인연이 있는 것일까?

- 일본의 서동설화, 마나노 장자 이야기
일본의 분고오노시에는 서동설화와 매우 유사한 전설이 전해진다.
숯을 팔았던 스미야키 코고로가 나라의 공주와 혼인하고, 부자(마나노 장자)가 되어 절을 창건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설화의 시대적 배경은 7세기 무왕대보다 앞선 6세기이다.

사리봉안기에 기록된 미륵사의 창건 연대는 완공시기일 뿐 정확한 건립 시작연도는 밝혀지지 않았다. 미륵사지 석탑의 경우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최초의 양식이며 알려진 것보다 더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일부 학자들의 입장이다. 다양한 백제의 유적들이 발굴되는 가운데 7세기 무왕대에 맞춘 해석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평을 열 백제사 연구의 현장을 조명한다.

신역사스페셜 91회 백제사 최대 미스터리, 서동설화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2011.12.15. 방송)

http://history.kbs.co.kr/
5 سال پیش در تاریخ 1398/07/01 منتشر شده اس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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