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창] 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편견을 넘어 통합으로” [통일로 미래로] / KBS 202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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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هزار بار بازدید - 2 ماه پیش - 1990년대 북한에선 주민 수백만 명이
1990년대 북한에선 주민 수백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리다 숨지는 '고난의 행군' 시기가 있었습니다.

생존을 위해 탈북을 결심하는 주민들도 많았는데요.

당시 우리 정부는 이들의 국내 정착을 돕기 위해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지원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7월 14일은 이 법이 시행된 날인데요.

탈북민을 포용하고 그들의 권익 향상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정부는 지난 5월, 이 날을 '북한이탈주민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올해 첫 국가기념일을 맞아 전국 곳곳에선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는데요.

장예진 리포터가 찾아가 여러 세대 탈북민들의 삶과 바람을 들어보았습니다.

함께 보시죠.

[리포트]

천신만고 끝에 북한을 벗어난 사람들.

1987년, 김만철 씨 일가족 11명은 북한 청진항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 20여 일 만에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김만철/1987년 2월 :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서 자유스럽게 살기 위해 떠났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6년엔 김경호 씨 일가족 17명이 중국과 홍콩을 거쳐 입국했는데요.

[최현실/김경호 씨 부인/1996년 : "받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2004년엔 탈북 후 동남아 국가에 머물러있던 탈북민 460여 명이 항공편으로 한국에 도착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지난 3월까지 남한에 온 34,121명의 탈북민들.

목숨이 달린 생의 갈림길에서 이들은 왜, 남한을 선택하게 되었을까요.

[이은희/탈북민 : "(북한에서는) 정체성이 없이 살아가는 거죠. 그래서 한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때로는 가족을 남겨두고, 때로는 목숨을 걸고 고향을 등져야 했던 탈북민들.

절박한 이유은 제각각이겠지만 남한을 택한 데에는 세대를 초월한 공통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북한 함경남도 홍원군을 떠나와 서울에 정착한 이정남 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예쁘다."]

2006년 한국에 온 할머니는 남한에 도착한 나이를 기준으로 최고령 탈북민이기도 합니다.

[이정남/최고령 탈북민 : "(어르신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88세. 대한민국에 올 때는 70세였고요. 집에서 떠날 때는 68세였어요. (탈북 후) 중국에서 2년 있다가 한국으로 왔죠."]

북한에선 군인 남편이 퇴역한 후, 살길이 막막해졌었다고 하는데요.

함께 두만강을 건넌 남편은 탈북 과정에서 중국 공안에 잡혀 강제 북송당했다고 합니다.

현재 남편의 생사는 물론, 북에 두고 온 세 자녀의 소식도 알 길이 없습니다.

[이정남/탈북민 : "(따님만 여기에 오시고 나머지 3남매는 북한에 있는 거예요?) 네, 거기에 있어요. 다 결혼했지. 말 한마디 잘못했다 죽었는지 어쨌는지 그것도 모르고…."]

먼저 한국에 온 막내딸과 서로 의지하며 지낸다는 할머니는 북한을 떠나올 때 입었던 옷가지를 여전히 보관하고 있었는데요.

[이정남/탈북민 : "(어떻게 지금까지 갖고 계셨어요?) 사람들이 그런다고. 할머니 그거 버리지 말아라. 그게 할머니 운을 도와주는 물건이다."]

남한 도착을 '행운'이라 여길 만큼, 한국에서 보낸 시간을 값지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여행 다니시니까 어떠세요?) 그러니까, 좋은 세상이지. 여기 갈매기가 날아 가는 게 있을 거예요."]

'억압'과 '궁핍'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유'롭기 위해 적잖은 나이에 남한행을 선택했다는 이정남 할머니.

[이정남/탈북민 : "여기 와서 제일 좋다는 게 쌀밥 먹고 자유로이 돈이 있으면 놀러 갈 수도 있고 거기(북한) 있었다면 어디 이런 거 구경하겠나."]

축제 분위기로 한껏 흥이 오른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행사장.

이곳에서 만난 북한인권활동가 효심 씨와 대학생 충혁 씨는 고향이 같은 20대 탈북민입니다.

[임충혁/탈북민 : "저는 (고향이) 혜산이고 같은 혜산인데 그때는 몰랐고 한국에 와서 친해졌고요. 이름은 효심이라고…."]

북한 청년들이 남한행을 원하는 이유로, 이들도 꿈과 자유를 꼽았는데요.

[이효심/탈북민 : "(남한에서는) 꿈을 펼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자유가 있잖아요. 뭐든지 할 수 있다 이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국경을 강력히 통제하면서 한국으로 오는 길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올초 김정은 위원장은 대한민국을 제1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통일' 지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해 대응하겠다는 방침인데요.

이런 까닭에 7월 14일 북한이탈주민의 날은 남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조민호/남북하나재단 이사장 : "이제부터는 (탈북민에게)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위해서 이런 날이 정해졌다고 보고 그야말로 통일이 앞당겨지는 것이 아닌가 통일을 준비하는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북한을 벗어나 남녘에 정착하기까지 녹록지 않은 과정을 견뎌낸 탈북민들.

국가기념일인 북한이탈주민의 날 제정을 계기로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지 기대하고 있을까요.

광주광역시에서 이른 아침 왔다는 은희 씨,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과 북한 음식 재료를 한아름 준비해왔습니다.

[이은희/탈북민 : "가지고추도 있고, 가지도 있고, 여기 오이고추도 있고…."]

옥수수 가루를 재빨리 반죽해 북한식 떡을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이은희/탈북민 : "속도전 떡이라고 해요. 속도전으로 (빠르게) 만들어진다고 해서…."]

2010년 대한민국 국민이 된 은희 씨에게 이날은 여느 때보다 감격스럽다고 합니다.

[이은희/탈북민 : "저희의 날이라고 정하기까지 했잖아요. 그래서 이런 부분들이 너무 감사하고 과분하고요. 서로가 차츰차츰 갑자기 알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탈북민을) 예쁘게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은희 씨의 바람처럼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도 북한 문화를 즐기며 탈북민들과 더욱 가까워진 모습이었는데요.

[주현수/방문객 : "(탈북민을) 가깝게 밀접하게 보다 보니까 진짜 한민족이 맞구나라고 하는 따뜻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차별과 편견은 여전한 숙제입니다.

함경북도 온성에서 온 유빈 씨는 주경야독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요리연구가가 됐는데요.

아직 허물어야 할 인식의 벽이 높다고 말합니다.

[장유빈/탈북민 : "사람들이 제 목소리 톤 듣고 중국산이냐 국산이냐 물어봐요 저 보고. 그러면 저는 북한산이라고 하거든요. 아직까지 문화는 다를 수 있지만 그건 다 사람의 차이니까 거기에 대한 인식이 깨졌으면 좋겠어요."]

발전된 대한민국의 모습을 북녘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유빈 씨.

[장유빈/탈북민 : "왕래가 조금씩 된다고 하면 가서 술도 사주고 고기도 사주고 싶고 차를 태워서 한 바퀴 돌았으면 좋겠어요."]

북녘의 가족과 이웃과 왕래할 날을 기다리는 이정남 할머니까지.

[이정남/탈북민 : "빨리 통일이 돼서 부모, 형제, 자식들 다 데리고 와서 한가족 만들어 좋은 세상에서 한번 살아보고 죽었으면 좋겠어."]

포용과 권익 향상, 사회통합을 위해 만들어진 북한이탈주민의 날.

언젠가는 하나 된 한반도에서 통일의 날로 거듭나기를 탈북민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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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 #탈북민 #정착
2 ماه پیش در تاریخ 1403/04/29 منتشر شده اس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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